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알론조 모닝 (문단 편집) === 마이애미 히트 시절 part 1 === [[파일:external/www.ultimatenba.com/AlonzoMourning001.jpg]] 결국 연봉 재계약 협상의 이견을 극복하지 못한 샬럿은 1995-96 시즌 개막을 단 하루(!) 앞둔 시점에서 모닝을 [[마이애미 히트]]로 트레이드 시켜버렸다. 이 댓가로 샬럿은 글렌 라이스, 맷 가이거 등을 받았다. 마이애미가 모닝을 영입할 수 있었던 배경은, 그 시즌부터 새로 감독을 맡은 [[팻 라일리]]가 강한 센터를 축으로 한 농구를 선호했기 때문. 재미있는 사실은 지금이야 마이애미에서 영구결번이 될 정도로 마이애미에서 커리어 하이를 찍은 모닝이지만, 당시만 해도 모닝의 마이애미 행은 팬들에게 매우 어색하게 받아들여졌다는 점이다. 팀의 간판스타가 시즌 개막을 단 하루 앞두고 트레이드 되어버린건 전무후무한 일인데다, 당시 신생팀 이미지를 벗지 못한건 마찬가지였어도 앞날이 창창해보였던 샬럿과 달리 마이애미는 루징 프랜차이즈로 인식되던 때여서 더더욱 그러했다.[* 엄밀히 말하면 마이애미의 문제보다 모닝이 샬럿의 미래로 여겨졌던 것이 컸다. 당시 호네츠는 모닝, [[래리 존슨]], [[먹시 보그스]] 트리오에 대한 기대감이 어찌나 컸던지 세 선수의 초상화를 도시 중심의 퍼스트 유니온 뱅크 건물에 거대한 벽화로 남길 정도였다. 웃긴 건 이 벽화가 그려진게 95년. 즉, 대대적으로 거대벽화까지 그리면서 "이 친구들은 우리의 미래입니다!!"라고 홍보했는데 불과 몇달만에 팀과 계약갖고 싸우다가 이적했다(…). 게다가 다음해인 96년엔 존슨이 닉스로, 97년에는 보그스까지 떠났으니... 그려진지 몇 달만에 어색해진 이 벽화의 처분 역시 논란이 되었는데, 팬 투표 결과 마스코트인 벌 "휴고"의 모습을 대신 그려넣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투표한 호네츠 팬들 중 일부는 "최소한 마스코트는 절대 떠날 일이 없겠지..."라고 했는데, 운명의 장난인지 10년도 안되어 휴고 역시 팀 전체와 함께 뉴올리언즈로 떠났다(…). 결국엔 돌아왔지만...] 하지만 모닝은 명장 라일리의 지도와 더불어 이후 트레이드로 합류한 팀 하더웨이, PJ 브라운 등과 함께 팀을 플레이오프 막차로 이끄는데 성공했다. 물론 1라운드에서 72승 시카고에 시리즈스코어 0-3으로 스윕당하긴 했지만 히트가 이전의 약팀 이미지에서 플레이오프 컨텐더로 올라선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모닝 또한 플레이스타일이 샬럿 시절보다 더욱 전투적으로 변했다. 샬럿 시절만 해도 깔끔한 용모와 플레이를 펼쳤던 그였지만, 히트 시절부터는 머리도 스킨 헤드로 밀고 코트에서 더욱 호전적으로 플레이하며 'Warrior(전사)'라는 별명을 얻은 것도 이 시점. 그 다음 1996-97 시즌엔 61승을 거두면서 디비전 우승과 함께 컨퍼런스 파이널까지 진출하는 히트 구단 역사상 최 전성기를 맞이했다. 이후 몇년간 컨퍼런스 최상위권에 위치하며 모닝 또한 1998-99 시즌엔 올 NBA 퍼스트팀 [[센터(농구)|센터]]및 블록왕 2회, 2년 연속 수비왕 등극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이 시즌의 MVP는 [[유타 재즈]]의 [[칼 말론]]에게 돌아갔지만, 많은 사람들이 MVP는 모닝이 받았어야 했다는 말을 할 정도로 모닝에게 있어서는 최 전성기였던 시즌이었다.[* 99시즌은 유독 절대강자가 없던 시즌이었다. 그 전까지는 시카고 불스의 마이클 조던이 확고부동한 1인자였고, 그가 MVP를 뺏긴 97시즌의 경우 유타가 역대 최고성적 (64승)을 거뒀고 조던의 장기집권을 우려한 이탈표가 컸다. (실제로 이때 MVP는 역대 가장 논란이 많은 케이스이기도 하다. 점수차이도 적었고) 그러나 99시즌은 동부에서 3팀이 최고 승률 타이 (33승)를 기록했고 서부에서도 유타와 스퍼스가 37승으로 타이를 기록할 정도로 확 돋보이는 팀이 없었다. 이 상황에서 아직 2년차에 불과한 던컨이나 공격력이 최정상급 선수치곤 탁월하지 않은 데다 팀성적도 좀 애매한 모닝 대신 입증된 레전드인 칼 말론이 수상한 것이다. 실제로 이때 말론은 1위표 44장, 2위 모닝이 36표, 3위 던컨이 30표를 받았는데, NBA에서 MVP는 수상자가 1위표의 과반 이상을 득표하는게 일반적인 것을 감안하면 이때 말론은 표를 상당히 적게 받은 것이며, 모닝이나 던컨은 아깝게 상을 놓쳤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모닝은 이때가 유일한 수상 기회였기 때문에 더욱 아까운 케이스.] 그러나 팀은 계속해서 플레이오프 탈락을 하며 고배를 마셨다. 특히 그 시점에서 라이벌리를 형성한 [[뉴욕 닉스]]에겐 늘 시드에서 앞서고도 3년 연속으로 업셋을 당하는 수모를 겪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